본문 바로가기

책추천22

책리뷰 20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 제임스 볼드윈, 해외 에세이, 흑인철학 너를 파괴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네가 진짜로 백인들의 세상에서 라고 부르는 존재라는 믿음이다. 1963년에 쓰인 제임스 볼드윈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의 원제는 The Fire Next Time이다. 제임스 볼드윈은 20세기 미국 문학과 민권 운동의 중요한 목소리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가다. 그는 소설, 에세이, 희곡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흑인의 삶과 미국 사회의 구조적 인종차별을 누구보다 날카롭고 정직하게 드러냈다. 1963년에 발표된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 는 볼드윈이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직면하며 쓴 대표적인 에세이로, 당대 인종 문제에 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로 손꼽힌다. 볼드윈은 이 책에서 흑인이기에 다른 이유 없이.. 2025. 12. 20.
책리뷰 19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밀러, 해외소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룰루 밀러는 소설가라기보다는, 논픽션 작가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에 가깝다.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과학 프로그램 Radiolab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과학적 사실을 인간의 감정과 신념, 실패의 이야기와 엮어 전달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왔다. 그녀의 글은 언제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인간이 왜 그 정답을 갈망하게 되었는지를 묻는 쪽에 가깝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밀러의 첫 책이자, 자신의 삶이 깊은 혼란에 빠졌던 시기에 쓰인 작품이다. 개인적 상실과 좌절 속에서 그녀는 질서와 완벽함을 맹렬히 믿었던 과학.. 2025. 12. 20.
책리뷰 18 《어떤 나무들》, 최승자, 에세이 나의 이상한 버릇 중의 하나: 이렇게 해야 되나 저렇게 해야 되나 결정해야만 할 때 얼마간 궁리를 해보다가 그래도 마음을 정하지 못할 땐 결정을 잠에 맡긴다.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하고 하룻밤 자고 나면 아침에 눈을 뜨면서 결정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최승자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 《어떤 나무들》을 한국에서 독일로 오는 비행기에서 읽었다. 나에게는 익숙한 곳에서 더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첫 독일행 비행기를 타던 게 선명이 기억났다. 예전에 최승자 시인이 엄마의 죽음에 대해 서술한 대목을 읽고 펑펑 울었던 기억도 난다. 담담하고 건조하지만, 어린아이처럼 관찰하는 그녀의 문장들을 참 좋아했다. 세상의 다양한 일들도, 그녀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면 뭐든 견딜 수 있을 만하지.. 2025. 12. 19.
책리뷰 17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에세이 인간은 즐거움을 먼저 발견했을까, 아니면 괴로움을 먼저 발견했을까? 책 목차가 나오기 전에 시인의 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최근의 한 10여년신비주의적 꿈들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는 많은 독자들에게도 단순한 산문집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세계를 통과해온 방식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이 책이 초판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증보되어 나왔다는 사실은, 글과 글 사이에 흐르는 시간의 두께를 더 또렷하게 만든다. 초기의 문장과 후기에 쓰인 문장 사이에는 단절보다는 지속이 있고, 그 지속 속에서 시인의 사유는 더 느려지고 더 깊어진다. 병풍 하나로 죽음을 온전히 가리고 그 앞에서 이야기하고 술 마시고 고스톱을 치는 그러한 풍경들이 하나도 불경스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 삶에 편안하게 만들어진, 지혜로운 죽음.. 2025. 12. 19.
책리뷰 16 《산책자》 로베르트 발저, 산문집 왜냐하면 이 아름다운 지상을 구성하는 모든 피조물과 사물들을 그냥 휙 지나쳐버리고, 미치광이 마냥 질주하면서 비참한 절망에서 달아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신없이 앞으로만 내달리는 일에서 재미를 느끼는 심리를, 나는 절대 납득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영영 납득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고요를, 고요한 것을 사랑한다. 나는 검약과 절제를 사랑하고 모든 종류의 소란과 성급함을, 정말이지 마음속 깊숙이 혐오한다. 진실을 말했으면 더 이상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스위스의 국민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은 줄거리를 따라가는 작품이라기보다 걷는다는 행위가 한 인간의 사고와 감정, 그리고 사회적 역할을 어떻게 느슨하게 풀어놓는지 보여주는 산문적 소설이다. 독일어 원제 Der Spaziergang으로 191.. 2025. 12. 18.
책리뷰 15 《Turning: A Swimming Memoir》 Jessica J. Lee, 외국에세이 제시카 J. 리의 Turning: A Swimming Memoir는 베를린의 호수들을 수영하며 쓴, 자연 에세이이자 회고록이다. 영어권에서는 이 책을 상실과 정체성, 자연을 함께 사유하는 ‘물속의 치유기’로 읽는 리뷰가 많다. 52주 동안 52개의 독일 호수를 찾아가 수영하겠다는 계획은 단순한 도전이라기보다, 마음이 무너진 시기에 스스로를 다시 붙들기 위한 구조이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잡았던 계기는 아주 사적인 기억에서 시작한다. 그 여름, 친구에게 빌린 Turning을 읽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책장을 넘길수록 ‘호수로 캠핑을 가고 싶다’는 욕망이 점점 현실감 있게 자라났다. 책이 요구하는 건 여행 계획표가 아니라 몸의 감각이다. 베를린과 근교의 물로 직접 들어가 보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강.. 2025.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