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책리뷰 19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밀러, 해외소설

by 팍초이 2025. 12. 20.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표지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룰루 밀러는 소설가라기보다는, 논픽션 작가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에 가깝다.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과학 프로그램 Radiolab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과학적 사실을 인간의 감정과 신념, 실패의 이야기와 엮어 전달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왔다. 그녀의 글은 언제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인간이 왜 그 정답을 갈망하게 되었는지를 묻는 쪽에 가깝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밀러의 첫 책이자, 자신의 삶이 깊은 혼란에 빠졌던 시기에 쓰인 작품이다. 개인적 상실과 좌절 속에서 그녀는 질서와 완벽함을 맹렬히 믿었던 과학자 루이 아가시의 삶에 매혹되고, 그의 집요한 신념을 따라가며 스스로를 지탱해보려 한다. 하지만 밀러의 서사는 결국 아가시의 몰락과 함께, 질서를 향한 집착이 얼마나 쉽게 폭력과 배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과학사의 오류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 또한 ‘질서가 존재하길 바랐던 한 인간’이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사의 한 인물을 따라가는 전기처럼 시작하지만, 끝내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질서를 부여하려는 방식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의 중심에는 ‘자연에는 도덕률과 위계, 완벽함의 사다리가 숨겨져 있다’는 오래된 믿음이 있다.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생각은, 인간을 꼭대기에 두고 동물·식물·무생물로 이어지는 연속체 위에 모든 존재를 배열할 수 있다는 ‘신성한 사다리’, 곧 스칼라 나투라이(Scala Naturae)라는 개념으로 정식화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구상하고, 이후 수많은 사상가와 과학자들이 계승해온 이 사유는 인간에게 세계가 질서정연하고 이해 가능하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책 속에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루이 아가시는 이 질서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믿은 사람이다. 현미경과 돋보기를 통해 생물을 관찰하며 그는 구조의 복잡성, 생식 방식, 주변 세계와 맺는 관계를 ‘객관적 척도’라 믿고 생명체에 등급을 매겼다. 도마뱀은 자손을 돌본다는 이유로 어류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기생충은 기생이라는 방식 자체 때문에 단연코 하등한 생명체로 분류된다. 빌붙고 속이고 더부살이하는 존재는 자연의 도덕률 안에서 낮은 자리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여기서 과학은 관찰을 가장한 가치 판단으로 미끄러지고, 자연의 질서는 인간의 윤리관을 투사한 위계가 된다.

 

그러나 밀러는 이 확고한 질서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육체가 어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 아가시가 충격을 받을 만큼 인간과 닮은 물고기의 골격 구조는 인간에게 경고처럼 다가온다. 인간이 꼭대기에 있다는 믿음은 얼마나 취약한가. 우리가 생각하는 고귀함과 도덕성은 자연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얼마나 낮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연적으로 얼마나 ‘낮은’ 기원에서 출발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는 통찰이 여기서 나온다.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질서에 대한 집착이 개인의 심리와 사회적 폭력으로까지 확장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 즉 긍정적 착각은 진화를 가능하게 한 선물이자 동시에 위험한 결함이다.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이 지적하듯, 공격적인 사람들은 종종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민족주의적 제국주의, 지배자 민족 이데올로기, 귀족의 결투, 학교 폭력과 길거리 폭력까지—이 모든 것은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자연에 위계가 있다고 믿는 순간, 인간 사회의 위계와 폭력은 정당화된다.

 

그렇다면 어떤 인지적 결함이 그릿을 획득하는 데 도움이 될까? 바로 긍정적 착각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은 결국 하나의 선언처럼 읽힌다. 자연에는 우리가 기대해온 도덕적 질서도, 완벽한 사다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불안 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다. 이 책은 질서를 사랑했던 한 과학자의 삶을 따라가며, 그 질서가 무너질 때 비로소 보이는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혼란스럽고 불완전하지만, 그렇기에 폭력적인 위계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세계. 밀러의 글은 과학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속여왔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며, 우리가 붙잡고 있던 ‘사다리’를 내려놓으라고 조용히 권한다.

 

그래서 이 책은 전기이자 과학 에세이이면서 동시에 고백에 가깝다. 밀러는 자연에 위계가 있다는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태도를 탐색한다. 그녀의 문장은 냉정한 과학 설명과 개인적인 감정의 균열을 오가며, 독자로 하여금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끝내 피할 수 없게 만든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곰 출판,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