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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22

책 리뷰 27 《Black Skin, White Mask 검은 피부, 하얀 마스크》, 프란츠 파농, 철학, 흑인 철학 As long as the black man remains on his home territory, except for pretty internal quarrels, he will not have to experience his being for others. There is in fact a being for other, as described by Hegel, but any ontology is made impossible in a colonized and acculturated society. 흑인이 자신의 고향 땅에 머무르는 한, 사소한 내부적 다툼을 제외하면, 그는 타인을 위한 존재로서의 자기 존재를 경험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헤겔이 말한 것처럼 타인을 위한 존재가 존재하지만, 식민화되고 동화.. 2025. 12. 24.
책 리뷰 25 《토성의 고리》, W.G.제발트, 해외소설, 장편소설 토성의 고리는 적도 둘레를 원형궤도에 따라 공전하는 얼음결정과, 짐작하건대 유성체의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과거에는 토성의 달이었던 것이 행성에 너무 가까이 위치하여 그 기조력으로 파괴된 결과 남게 된 파편들인 것으로 짐작된다. 이 이미지가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를 읽는 내내 붙잡고 놓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이 책이 결국 세계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보이는 형태에는 이미 파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 역시 멋지게 비상하는 곡선이 아니라 어느 자오선에 도달한 뒤 암흑으로 하강하는 궤도에 더 가깝다. 실제로 내가 침대에 누워 볼 수 있던 세상이라고는 창틀 안에 갇힌 무채색의 하늘조각이 전부였다. 제발트는 영국 동부 서퍽(Suffolk.. 2025. 12. 23.
책 리뷰 24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해외소설 잘 들어요. 나는 빵장수일 뿐이라오. 다른 뭐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소. 예전에, 그러니까 몇십 년 전에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을지 몰라요.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일들이니까 나도 잘 모르겠소. 어쨌든 내가 어땠건 이제는 더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거요. 지금은 그저 빵장수일 뿐이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들의 변명이 될 순 없겠지요. 그러나 진심으로 미안하게 됐습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카버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열려” 있는 이야기로 기억된다. 그의 초기 단편들이 대개 단절과 궁핍의 공기를 단단히 잠가두는 방식이었다면, 이 작품은 끝내 어떤 틈을 남긴다. 그 틈은 거창한 구원이나 화해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감각이 아주 잠깐 다른 사람에게 접속되는 순간에서 생긴다. 그래서 영어권 리뷰들은 대.. 2025. 12. 22.
책 리뷰 23 《다와다 요코: 몸과 사잇공간의 시학》, 정항균, 상상해낸 민족을 묘사하려 할 때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보일까? 그들의 언어는 어떻게 기능할까?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것은 상상해낸 허구적인 문화권에서 온 관찰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의 ´ 세계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이것은 묘사된 것이 아닌 묘사하는 사람이 허구적이 되는 허구적 민족학의 시도다. 정항균의 다와다 요코: 몸과 사잇공간의 시학은 다와다 요코 문학을 하나의 테마로 환원하기보다, 그녀가 언어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책의 중심에는 몸과 사잇공간이 있다. 여기서 사잇공간은 단순히 두 문화 사이의 중간지대가 아니라, 번역 불가능성과 번역 가능성이 동시에 발생하는 장소, 말과 침묵, 내부자와 외부자, ‘고유한 것’과 ‘이방적인 .. 2025. 12. 22.
책 리뷰 22 《바벨》, 정용준, 한국소설 언어는 인간의 존재이자 고향이지만 말은 그것으로 튕겨 나온 날카로운 화살이고 집 떠난 탕자와도 같습니다 언젠가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아빠 서재에 꽂혀있던 정용준의 소설 《바벨》을 찾았다. 오래전 나의 형제가 샀던 책이다. 자녀들이 독립하여 집을 떠나고 한해 한해 지나면서 물건들이 조금씩 정리되지만, 아빠 서재의 책꽂이는 여전히 정리되지 못한 채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우리가 아직 치우지 못한 흔적들로 엉켜있다. 이 책이 아직 여기 있었구나 - 하며 조금 읽다가 독일로 가져올 때 챙겨 왔다. 《바벨》은 언어와 존재, 인간의 인식에 대한 깊은 사유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말과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닌, 물리적 실체와도 같은 존재로 인식하며, 이를 통해 인간 내면의 모.. 2025. 12. 22.
책 리뷰 21 《Kritik der schwarzen Vernunft》(흑인 이성에 대한 비판), 아킬레 음벰베, 흑인철학 지난 포스트에서 언급했듯, 내가 이 철학자를 처음 접한 것은 약 5년 전, 학교 세미나에서였다. 서양 철학자들로 빼곡하던 세미나 목록 속에서 ‘흑인 철학’을 전면에 내세운 수업은 처음이었고, 세미나의 제목은 아킬레 음벰베의 《Kritik der schwarzen Vernunft》읽기였다. ‘흑인 이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무엇을 전복하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매주 한 챕터씩 책을 읽으며 한 학기를 보냈다. 이 시간이 유난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그때가 바로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이다. 강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번갈아가며 진행되었고, 대면 수업이 있는 날이면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음벰베의 문장을 붙잡고 토론을 이어갔다. 원래도 쉽지 않은 독일어 텍스트였는데, 마스크로 오가는 .. 2025.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