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시카 J. 리의 Turning: A Swimming Memoir는 베를린의 호수들을 수영하며 쓴, 자연 에세이이자 회고록이다. 영어권에서는 이 책을 상실과 정체성, 자연을 함께 사유하는 ‘물속의 치유기’로 읽는 리뷰가 많다. 52주 동안 52개의 독일 호수를 찾아가 수영하겠다는 계획은 단순한 도전이라기보다, 마음이 무너진 시기에 스스로를 다시 붙들기 위한 구조이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잡았던 계기는 아주 사적인 기억에서 시작한다. 그 여름, 친구에게 빌린 Turning을 읽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책장을 넘길수록 ‘호수로 캠핑을 가고 싶다’는 욕망이 점점 현실감 있게 자라났다. 책이 요구하는 건 여행 계획표가 아니라 몸의 감각이다. 베를린과 근교의 물로 직접 들어가 보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강한 초대. 저자 역시 논문 막바지의 고립과 압박 속에서 수영으로 몸을 텍스트 밖으로 데려가려고 했고, 그 과정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고 말한다.
Turning의 형식은 명확하다. 1년 동안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일대의 호수 52곳을 찾아가 ‘매주 한 곳’씩 들어간다. 그래서 목차는 사건의 제목이 아니라 호수의 이름들로 짜여 있다. 이 구조 덕분에 독자는 읽는 내내 지도를 펼치게 되고, 내가 아는 호수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생긴다. 슐락텐제(Schlachtensee), 크룸메 랑케(Krumme Lanke), 토이펠 스제(Teufelssee), 반제(Wannsee) 같은 이름을 발견하면, 그건 정보가 아니라 기억의 스위치가 된다. 실제로 베를린 지역 소개 글에서도 이 책이 크룸메 랑케, 슐락텐제, 반제 같은 구체적인 장소들을 어떻게 담아내는지 언급한다.
공교롭게도 내 캠핑 이틀째, 책은 내가 있는 곳, 슈프링제(Springsee) 파트에 도달했다. 글 속의 장소가 바로 ‘지금 내가 있는 곳’이라는 사실은 풍경을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냥 물가가 아니라, 누군가의 문장이 한 번 잠겼다 떠오른 자리처럼 느껴졌달까. 이 책이 장소를 특별하게 만드는 방식은 바로 이런 식이다. 멀리서 “베를린 근교 호수”라고 뭉뚱그리면 아무 의미가 없는데, 한 호수의 이름을 부르고, 그곳의 물온도와 빛과 바닥의 진흙과 수초의 감촉까지 따라가면, 장소는 갑자기 ‘나의 시간’에 접속한다.
리는 걷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풍경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들을 반복해서 쓴다. 물 위에서 보는 세계는 ‘개구리 시점’이 되고, 몸이 수면 아래로 들어가는 순간 풍경은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의 내부가 된다. 이 “물의 시점”이 결국 마음의 시점을 바꾼다.
제목 Turning은 계절에 따라 호수의 물이 ‘뒤집히고 섞이는’ 변화, 즉 물의 순환과 층위의 전환을 가리킨다. 봄에 얼음이 녹고, 여름에 조류가 떠오르고, 가을에 다시 맑아지는 물의 변화를 따라가며, 이 책은 상실과 회복을 같은 리듬으로 놓는다. 그래서 여기서 치유는 감정의 결론이 아니라, 계절처럼 반복되는 조정 과정으로 그려진다. 어떤 날은 잘 견디는 것 같다가도, 어떤 물에 들어가면 다시 무너진다. 하지만 다음 주에 또 다른 호수가 있고, 또 다른 물의 온도가 있고, 또 다른 ‘살아 있음의 증거’가 기다린다.
좋았던 점은, 이 책이 베를린을 “도시”로 찬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수들은 관광지가 아니라, 도시를 둘러싼 지층과 역사,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드러나는 표면이다. 어떤 호수는 야생동물이 있고, 어떤 호수는 정치적 과거와 얽혀 있으며, 어떤 호수는 동서 베를린의 흔적을 품기도 한다는 식으로, 물은 풍경이 아니라 기록 매체가 된다. 동시에 이 책은 끝까지 ‘몸’의 기록이기도 하다. 수영은 추상적인 사유가 아니라, 차가움과 두려움과 숨의 리듬을 견뎌야만 가능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떤 인터뷰에서는 그녀가 52주 동안 매주 호수로 나가는 규칙(수영장 금지, 웻수트 금지, 도보·자전거·대중교통으로 접근 가능한 곳)을 세웠다고 말하는데, 이 제약이 오히려 책의 윤곽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Turning을 다 읽고 남는 인상은 “수영을 하고 싶다”는 단순한 충동 이상이다. 물은 여행지가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감각하기 위한 장치가 된다. 여름날 책을 읽다가 호수로 캠핑을 꿈꾸게 된 것도, 어쩌면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직접적인 제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된다. 베를린에 산다면, 베를린의 물로 들어가면 된다. 그리고 그 물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풍경은 배경이 아니라 내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Turning: A Swimming Memoir》, Jessica J. Lee, Virago,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