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한 버릇 중의 하나: 이렇게 해야 되나 저렇게 해야 되나 결정해야만 할 때 얼마간 궁리를 해보다가 그래도 마음을 정하지 못할 땐 결정을 잠에 맡긴다.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하고 하룻밤 자고 나면 아침에 눈을 뜨면서 결정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최승자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 《어떤 나무들》을 한국에서 독일로 오는 비행기에서 읽었다. 나에게는 익숙한 곳에서 더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첫 독일행 비행기를 타던 게 선명이 기억났다. 예전에 최승자 시인이 엄마의 죽음에 대해 서술한 대목을 읽고 펑펑 울었던 기억도 난다. 담담하고 건조하지만, 어린아이처럼 관찰하는 그녀의 문장들을 참 좋아했다. 세상의 다양한 일들도, 그녀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면 뭐든 견딜 수 있을 만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 책은 최승자 시인이 1994년 8월 말부터 1995년 1월 중순까지 미국 아이오와 시티의 인터내셔널 라이팅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동안 쓴 일기다. 약 6개월 동안 매일 써내려간 일기를 들여다보며, 낯선 곳에서 시작하는 설렘과 희미한 두려움의 감정을 복기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써온 일기를 오랫동안 쓰지 못하고 있다가, 날짜별로 빼곡히 채워진 이 책을 읽고, 다시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겼더랬다. 그 이후로 다시 일기를 지속적으로 쓰고 있다.
이 책의 매력은 솔직함과 유머, 그리고 사소한 일상에 대한 사유에 있다. 이국적인 풍경, 외국 작가들과의 교류, 번역과 언어에 대한 고민, 문화 차이와 웃음 나는 순간들이 담백하게 드러난다. 한국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체험 속에서 시인은 하루하루를 솔직하게 적어 내려간다.
그리고 윈드 차임이 바람 불 때마다 내는 그 소리도 너무 아름다웠다.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냥 아름답다고 말할 수 밖에는. 이상하게도 나는 아이오와에서 단 한 편의 시도, 아니 단 한 줄의 시구도 얻지 못했다. 모든 게 너무 다르기 때문에 내 감수성이 문 꽉 닫아버리고 있는 걸까. 그렇긴 하지만 안타깝지는 않다. 내가 체험하는 것들 모두 착실하게 내 내부로 가라앉고 있을 거다. 그리고 어느 날 시로 나오겠지.
"어떤 나무들은 바다의 소금기를 그리워하여 그 바다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바다 쪽으로 구부러져 자라난다”라는 이미지가 책 전체의 정서를 잘 보여 준다. 낯선 곳에서도 스스로의 뿌리를 향해 서 있는 존재의 내밀한 감각과 같다.
말이 안통하는 어디론가 떠나서 한 6개월쯤 지내다 오고 싶다.

《어떤 나무들》, 최승자, 난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