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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25 《토성의 고리》, W.G.제발트, 해외소설, 장편소설

by 팍초이 2025. 12. 23.

《토성의 고리》 표지

토성의 고리는 적도 둘레를 원형궤도에 따라 공전하는 얼음결정과, 짐작하건대 유성체의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과거에는 토성의 달이었던 것이 행성에 너무 가까이 위치하여 그 기조력으로 파괴된 결과 남게 된 파편들인 것으로 짐작된다.

 

이 이미지가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를 읽는 내내 붙잡고 놓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이 책이 결국 세계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보이는 형태에는 이미 파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 역시 멋지게 비상하는 곡선이 아니라 어느 자오선에 도달한 뒤 암흑으로 하강하는 궤도에 더 가깝다.

 

실제로 내가 침대에 누워 볼 수 있던 세상이라고는 창틀 안에 갇힌 무채색의 하늘조각이 전부였다. 

 

 

제발트는 영국 동부 서퍽(Suffolk) 해안을 걷는다. 책은 여행기처럼 시작하지만, 곧 여행기라는 장르가 얼마나 얇은 껍질인지 드러낸다. 8월, 오래전부터 토성의 영향 아래 놓인 달이라는 설정 자체가 이미 이 산책이 한낮의 낙관을 향하지 않는다는 예감이 된다. 그는 황량한 해안과 황무지, 무너진 저택과 사라져가는 산업의 흔적을 지나며, 눈앞의 풍경에서 멀리 떨어진 시간과 장소로 끝없이 미끄러진다. 이 책은 걷기의 기록이라기보다, 걷는 동안 발생하는 연상과 조사, 망상과 애도의 기록에 가깝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긴 여정의 출발점은 움직임이 아니라 정지다. 침대에 누워서 볼 수 있는 세상이 창틀 안의 무채색 하늘조각뿐이었던 순간. 《토성의 고리》는 노리치 병원의 병실에서 시작하고, 그 제한된 시야가 오히려 세계 전체로 뻗어가는 통로가 된다. 몸이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된 사유가, 전년도에 걸었던 서퍽의 풍경을 불러오고, 그 풍경은 다시 세계사의 파편들을 끌어당긴다. 움직임이 아니라 마비가 이 책의 엔진이 된다는 점이 오래 남는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들의 불가시성과 불가해함, 이것은 우리의 세계란 다른 세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토머스 브라운에게도 결국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그래서 그는 생각과 글을 통해 이승의 실존과 그에게 가장 가까운 것들뿐만 아니라 우주의 천구까지 이방인의 눈으로, 아니 창조우의 눈으로 관찰하고자 줄곧 노력했다. 

 

 

제발트는 그 브라운을 자신의 동료로 삼는다. 같은 도시 노리치의 기운을 빌려, 같은 방식의 고독한 관찰을 반복한다. 다만 그 관찰은 결론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찰이 깊어질수록 더 많은 연결이 생기고, 연결이 생길수록 더 많은 상실이 드러난다.

 

이 책에서 나는 글쓰기를 하나의 은신처로 보게 된다. 은신처에서 그는 언어들을 넘나들며 읽고, 편지를 쓰고, 사전을 만들기 위해 메모하고, 단어와 구문을 모으고, 스크랩북을 만든다. 누에가 실을 잣듯, 글쓰기로 사물을 시간의 흐름에서 구원하려는 충동. 텍스트가 섬유를 뜻하는 라틴어 textus에서 왔다는 사실이 우연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 대목은, 제발트의 문장이 왜 그렇게 직조처럼 느껴지는지 설명해준다.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를 앞으로 밀어가는 대신, 여러 시대의 찢어진 조각들을 실로 꿰어 임시로 이어 붙인다. 그 임시는 오히려 더 진실한 형태로 보인다. 영원한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모두 임시였다는 사실을, 이 임시적 직조가 역설적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성의 고리》의 과거는 늘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 그런데 제발트는 그것을 속임수로 쓰지 않는다. 기억이 원래 그렇다고 말하는 쪽에 가깝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불확실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기억 없이 불가능하다. 지침 없이 기억을 파헤치다 보면 진실보다 혼란 속에서 길을 잃기 쉽다는 말은, 독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책은 친절한 안내서를 자처하지 않는다. 길을 잃는 경험 자체가 책의 윤리처럼 느껴진다. 한편 영어권에서는 이 작품을 전통적인 소설이라기보다 여행기, 회고록, 에세이 명상, 허구가 섞인 혼성 장르로 읽는 시선이 많고, 그 혼성이 바로 제발트의 고유한 방법이라고 자주 정리된다.

 

또 한 가지, 제발트의 책에는 이미지들이 끼어든다. 서퍽에서 찍은 듯한 사진들만이 아니라 문서, 지도, 삽화 같은 것들이 텍스트의 흐름을 끊고 다시 잇는다. 그리고 그는 남의 글을 인용하면서도 종종 따로 표시해두지 않는다. 인용과 서술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이 책은 지식의 전시가 아니라 의식의 흐름이 된다. 무엇이 내 생각이고 무엇이 남의 문장인지가 뒤섞이는 방식 자체가, 기억과 애도의 작동 방식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토성의 고리가 결국 어떤 윤리적 형태라는 생각을 한다. 파편을 버리지 않고 궤도로 묶어두는 방식. 파괴 이후에 남은 것을 아름답다고 부르는 대신, 아름다움의 조건으로서 파괴를 끝까지 응시하는 방식. 제발트의 문장은 자주 아주 먼 이야기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도망이 아니라 집요한 복귀다. 눈앞의 풍경으로부터 출발해, 인간이 만들어낸 재난과 소멸의 긴 연쇄로 돌아오는 복귀. 그 연쇄를 직조해놓고도, 그는 마지막에 확신을 주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다른 세계의 그림자일지도 모르고, 그 그림자의 질감은 결국 파편의 질감과 닮아 있으며, 그 파편을 만지는 방식이 곧 우리가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라고.

 

밤이, 모든 인간적인 것과는 다른 이방인인 놀라운 밤이 산꼭대기 위로 애절하고 어슴푸레하게 지나간다. 

 

 

《토성의 고리》 내지

 

《토성의 고리》, W.G.제발트, 창비,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