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포스트에서 언급했듯, 내가 이 철학자를 처음 접한 것은 약 5년 전, 학교 세미나에서였다. 서양 철학자들로 빼곡하던 세미나 목록 속에서 ‘흑인 철학’을 전면에 내세운 수업은 처음이었고, 세미나의 제목은 아킬레 음벰베의 《Kritik der schwarzen Vernunft》읽기였다. ‘흑인 이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무엇을 전복하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매주 한 챕터씩 책을 읽으며 한 학기를 보냈다. 이 시간이 유난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그때가 바로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이다. 강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번갈아가며 진행되었고, 대면 수업이 있는 날이면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음벰베의 문장을 붙잡고 토론을 이어갔다. 원래도 쉽지 않은 독일어 텍스트였는데, 마스크로 오가는 독일어 발언은 더 잘 들리지 않았다. “이게 무슨 뜻이지?”라며 다시 묻고, 화면 속 텍스트와 현실의 침묵 사이를 오가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Kritik der schwarzen Vernunft》는 읽기 쉬운 책이 아니었다. 음벰베는 ‘흑인성’이 어떻게 근대 세계에서 발명되고, 관리되고, 소비되어 왔는지를 추적하면서, 인종이라는 범주가 단순한 정체성이 아니라 하나의 권력 장치였음을 드러낸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흑인을 대상화해 온 서구의 시선뿐 아니라, 이성·보편성·인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특정한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계속해서 마주해야 했다.
이 책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의심하게 만든다. 음벰베는 서구가 보편이라고 불러온 이성이 사실은 특정한 역사, 특정한 지리, 특정한 인간만을 중심에 두고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흑인은 그 이성의 바깥에 놓인 타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 이성이 작동하기 위해 끊임없이 호출되어 온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는 주장 앞에서, 나는 무력감도 느꼈다.
독일에서 이 책이 큰 주목을 받았다고 하는데, 여러 독일어 리뷰들은 이 책을 두고, 포스트식민 이론을 넘어 근대 세계 전체를 다시 읽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난해하고 도발적이라는 비판도 많았다. 비판이 많은 게 마땅하지 않은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연 어떤 식의 크리틱이 가능할지 말하기 어렵다.
Hat der Neger Anteil an der Identität der menschlichen Gattung? Oder sollte er im Namen der Differenz und der Besonderheit auf der Möglichkeit unterschiedlicher kultureller Ausgestaltungen ein und derselben Menschheit bestehen- kulturelle Ausgestaltugen, deren Bestimmung es nicht ist, sich selbst zu genügen, und deren Ziel letztlich universellen Charakter besitzt?
“흑인은 인류라는 집단 정체성에 어떤 몫을 차지하는가? 아니면 그는 차이와 특수성의 이름으로, 하나의 인류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 형식이 존재할 가능성 위에 서 있어야 하는가?” 이 문장은 단순히 흑인의 존재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정체성과 문화적 다양성 사이의 긴장을 사유하게 만든다. 음벰베는 흑인을 단순히 서구 중심의 ‘타자’로 보는 시각을 거부하고, 그들이 가진 문화적 특수성이 결코 스스로를 위해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류 전체에 의미 있는 보편성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문장 하나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 누가 ‘이성적’ 인간으로 인정받는가, 그리고 그 기준의 역사적 조건은 무엇인가를 압축하고 있다.

《Kritik der schwarzen Vernunft》, Achille Mbembe, suhrkamp taschenbuch wissenschaft 2205,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