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12 책리뷰 13 《올리버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게다가 사람들이 연중 이맘때를 이렇게 열심히 기념하는 것은 또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사람들의 삶이 어떻든(그들이 지금 지나치는 이 집들 가운데에는 근심스러운 고민도 있으리란 걸 제인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삶이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축하할 일임을 알기에 그들은 이맘때를 축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 제가 리뷰할 책은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버 키터리지》입니다. 저는 사실 반복해서 읽지는 못하는 타입의 사람인데요. 이 책은 무려 3번이나 읽었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분량과 문체라서 음악 듣듯이 읽었어요. 아, 이런 날은 이런 음악 듣고 싶다.. 2025. 12. 17. 책리뷰 12 《명예》 다니엘 켈만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말하는 걸 즐기지만, 많은 걸 경험한 사람은 느닷없이 할 말이 없어지는 법이라고 몇 년 전에 어느 노의사가 말했다. 지난 포스팅 다니엘 켈만의 《세계를 재다》에 이어 오늘은 《명예》 책 리뷰입니다. 《세계를 재다》가 2005년에 쓰이고 《명예》는 4년 후, 2009년에 쓰였습니다. 2017년에 쓰인《틸》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도 곧 읽어보고 싶네요. 다니엘 켈만의 《명예》는 하나의 주인공을 따라가는 전통적 장편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느슨하게 연결되며 점점 하나의 주제를 드러내는 연작소설에 가깝다. 9개의 다른 이야기가 묘하게 얽히 설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제목 그대로 핵심은 명예다. 더 정확히는 명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대 사회에.. 2025. 12. 17. 책리뷰 11 《세계를 재다》 다니엘 켈만 다니엘 켈만(Daniel Kehlmann)은 독일어권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동시대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역사적 인물과 지적 담론을 대중적인 서사 감각으로 엮어내는 데 강점이 있는 작가다. 그의 대표작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이 바로 《세계를 재다》와 《명예》다. 독일 팟캐스트 중에 《Alles Gesagt?》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다니엘 켈만이 출연한 적 있다. 이동하던 중에 우연히 팟캐스트를 켰는데, 다니엘 켈만 에피소드여서 반갑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Alles Gesagt?》는 독일 주간지 Die Zeit 에서 만드는 장시간 인터뷰 팟캐스트다. 크리스토프 아멘트와 요한 베그너 두 사람이 진행하며, 매회 한 명의 게스트를 초대해 삶, 일, 취향, 생각을 깊게 파고든다. 이 팟캐스트의 가장 큰.. 2025. 12. 17. 책리뷰 10 《스토리텔링 애니멀》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정유정 소설가의 인터뷰에서다. 그녀의 소설 《밝은 밤》을 하루 만에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부터 늘 소설가라는 존재가 궁금했다. 소설이란 결국 흰 종이 위에 글자를 채워 넣으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일이 아닌가. 캐릭터의 이름, 입는 옷, 말투와 습관, 그의 역사, 그의 환경, 그의 과거까지 모든 것을 설계하고 조율해야 하는 사람. 그런 일을 매일같이 하는 소설가의 삶과 작업 방식은 어떤 모습인지 늘 궁금했다. 그래서 소설가의 삶과 그들의 작업방식을 미약하게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인터뷰 형식의 글도 좋아한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정유정 소설가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그녀가 글쓰기에 참고하는 책 몇권을 추천했다. 그 목록 중 하나가 이 책이었다. 나는 곧 그 책.. 2025. 12. 17. 책리뷰 《걷기의 인문학》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보행의 역사는 글로 쓰이지 않은 은밀한 역사다.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은 걷기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나 취미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사회를 조직해 온 방식 자체로 읽어내는 책입니다.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몸에서 시작합니다. 저자는 보행의 역사가 대개 기록되지 않는 은밀한 역사라는 출발점에서, 도로와 도시, 계급과 성별, 종교적 수행과 정치적 행진까지 서로 다른 층위의 걷기를 한데 엮습니다.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음이 사실은 문화와 권력, 기억과 상상력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행위입니다.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걷기는 공간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간에 서사를 덧붙이는 방식입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 .. 2025. 12. 17. 책리뷰 《디지털 팩토리》,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 보이지 않는 노동, 모리츠 알텐리트 모리츠 알텐리트의 《디지털 팩토리》는 자동화와 알고리즘이 일자리를 없애고 인간을 대체한다는 익숙한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는 책입니다. 우리가 인공지능과 플랫폼을 떠올릴 때 흔히 보는 이미지는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기계, 버튼 하나로 움직이는 효율성, 그리고 인간적 노동에서 해방되는 미래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반대편을 보여줍니다. 디지털 자본주의에서 기술은 노동을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보다, 노동을 더 잘게 쪼개고 더 멀리 흩어지게 만들며 더 보이지 않게 조직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공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만 바뀌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굴뚝과 조립라인 대신 데이터와 플랫폼, 알고리즘과 평점, 하청 구조와 글로벌 노동시장이 새로운 공장의 골조가 됩.. 2025. 12. 16.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