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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2

책 리뷰 34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정유정, 글쓰기 정유정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는 소설가 정유정이 자신의 창작 비밀을 체계적으로 풀어놓은 책이자, 이야기 쓰기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법서다. 그녀의 소설 《7년의 밤》을 재밌어서 후다닥 읽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은 흔한 요령 나열식 안내서가 아니라, 실제로 소설을 써온 작가의 몸과 감각에서 길어 올린 경험의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 문장을 읽다 보면 ‘배운다’기보다 ‘이야기를 바라보는 눈’을 함께 훈련받는 느낌이 든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동사에 대한 집요한 태도다. 정유정은 수식어에 기대지 않고도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튼튼한 동사를 고르라고 말한다. ‘뛰다’ 대신 ‘내닫다’, ‘치닫다’, ‘쇄도하다’를 선택하면 ‘빨리’라는 부사가 필요 없어진다는 설명은 단순한 문장 기술을 넘어, .. 2025. 12. 29.
책 리뷰 28 《밝은 밤》, 최은영, 한국소설, 장편소설 그는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얼어붙은 강물이라는 말을 즐겨 했다. 시간은 환상일 뿐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근래 눈물을 흘린 적이 있던가. 눈물을 자주 흘리지 않는 내게, 특히나 더 건조해져버린 요즘같은 날씨에 이 책은 다시 예전의 나로 잠시 돌아가게 만들어줬다. 최은영의 밝은 밤은 ‘한 사람의 삶’이라기보다 ‘여러 세대의 삶이 어떻게 다음 사람에게 건너가는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야기의 힘은 사건의 급격한 반전에서 오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오래 지속되는 것들—가난, 돌봄, 상실, 생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우정과 연대—이 인물들의 시간을 촘촘히 엮어낸다. 이 책은 지연이 희령으로 내려가 할머니와.. 2025.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