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얼어붙은 강물이라는 말을 즐겨 했다. 시간은 환상일 뿐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근래 눈물을 흘린 적이 있던가. 눈물을 자주 흘리지 않는 내게, 특히나 더 건조해져버린 요즘같은 날씨에 이 책은 다시 예전의 나로 잠시 돌아가게 만들어줬다.
최은영의 밝은 밤은 ‘한 사람의 삶’이라기보다 ‘여러 세대의 삶이 어떻게 다음 사람에게 건너가는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야기의 힘은 사건의 급격한 반전에서 오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오래 지속되는 것들—가난, 돌봄, 상실, 생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우정과 연대—이 인물들의 시간을 촘촘히 엮어낸다.
이 책은 지연이 희령으로 내려가 할머니와 가까워지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외가 여성들의 삶을 통해 지연이 자기 삶의 붕괴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는 과정이다. 마지막에 어떤 극적인 사건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기보다는, “듣는 일”이 지연의 몸과 마음을 조금씩 다시 현실에 붙이는 방식으로 결말을 만든다. 그래서 읽고 나면 남는 건 ‘이야기의 반전’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에 대한 감각이다.
이 소설의 인상적인 점은 ‘여성들의 계보’를 영웅서사로 만들지 않는 방식이다.
할머니, 어머니, 딸로 이어지는 삶은 늘 꺾이고 지연되고 우회한다. 하지만 그 우회가 곧 생존의 기술이 된다. 누군가는 버티기 위해 사랑을 포기하고, 누군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숨기고, 또 누군가는 그 숨김의 대가를 뒤늦게 치른다. 밝은 밤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밤은 여전히 밤인데, 그 밤을 완전히 어둡게 만들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 서로에게 남기는 작은 증거들—같이 앉아 있던 시간, 나누었던 말, 기억해주는 마음—같은 것들이다.
구조적으로도 소설은 ‘현재의 주인공’만을 따라가지 않는다. 현재의 균열을 이해하기 위해 과거로 내려가고, 개인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가족과 시대의 층을 더듬는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이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 시대의 조건’으로 확장된다. 특히 여성에게 선택이란 실제로는 선택이 아니었던 순간들,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가 없어서 침묵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 소설의 정서적 바닥을 만든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비극을 과시하지 않는다. 울음을 강요하지 않고, 대신 한 사람의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또 어떻게 끊기거나 변형되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이야기해주는 사람’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말해지지 못한 삶이 말해질 때, 그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관계의 재구성이 된다. 누군가의 과거가 지금의 나를 덜 외롭게 만들 수 있다는 감각. 그게 이 소설이 주는 가장 조용한 위로다.
서평으로 한 줄로 정리하면, 밝은 밤은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라기보다 “상처가 세대를 건너는 방식과, 그럼에도 사람들이 서로를 살게 하는 방식”을 기록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 기록 방식이 담담해서 더 오래 남는다.
그 시기의 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툭 치면 쏟아져내릴 물주머니 같은 것이었는데, 이 소설을 쓰는 일은 그런 내가 다시 내 몸을 얻고, 내 마음을 얻어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 작가의 말 중 -

《밝은 밤》, 최은영, 문학동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