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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추천2

책 리뷰 31 《공간의 종류들》, 조르주 페렉, 에세이, 하이브리드에세이 이런 장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들이 존재하지 않기에, 공간은 질문이 되고, 더는 명백한 것이 못 되며, 더는 통합되지 않고, 더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공간은 하나의 의심이다. 나는 끊임없이 그곳을 기록해야 하고 가리켜야 한다. 공간은 결코 내 것이 아니며, 한 번도 내게 주어진 적이 없지만, 나는 그 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이 책의 장르 감각을 딱 한 단어로 고정하기는 어렵다. 프랑스에서도 이 작품은 단순한 에세이로만 분류되기보다는, 사유의 밀도와 문장의 리듬 때문에 철학적 에세이와 시적 산문(혹은 시) 사이에 놓인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설명되곤 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논리적으로 따라가다가도 어느 순간 문장이 감각의 기록처럼 변하고, 설명의 문장과 이미지의 문장이 서로를 밀어내며 공존한다.. 2025. 12. 26.
책리뷰 18 《어떤 나무들》, 최승자, 에세이 나의 이상한 버릇 중의 하나: 이렇게 해야 되나 저렇게 해야 되나 결정해야만 할 때 얼마간 궁리를 해보다가 그래도 마음을 정하지 못할 땐 결정을 잠에 맡긴다.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하고 하룻밤 자고 나면 아침에 눈을 뜨면서 결정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최승자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 《어떤 나무들》을 한국에서 독일로 오는 비행기에서 읽었다. 나에게는 익숙한 곳에서 더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첫 독일행 비행기를 타던 게 선명이 기억났다. 예전에 최승자 시인이 엄마의 죽음에 대해 서술한 대목을 읽고 펑펑 울었던 기억도 난다. 담담하고 건조하지만, 어린아이처럼 관찰하는 그녀의 문장들을 참 좋아했다. 세상의 다양한 일들도, 그녀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면 뭐든 견딜 수 있을 만하지.. 2025.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