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해 여름이란, 이런 아름다운 계절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지속될 여름이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아득하고 눈부신 말이었다.
정영수의 내일의 연인들은 사랑을 찬미하거나 연애의 서사를 극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사랑이라는 말과 사랑이 지나간 뒤에 남는 시간의 감각을 집요하게 더듬는 소설이다. 사랑은 본래 의미를 품은 신성한 무엇이 아니라, 때로는 그저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물질감 있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질량이 있고 푹신거리는 단어”라는 표현은, 사랑이 언제든 낭만의 의미를 잃고 언어로만 남을 수 있다는 냉정함을 품는다. 동시에 그 문장은 역설적으로,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단어가 오히려 피부에 닿는 촉감처럼 남아 사람을 붙잡는다는 사실까지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사랑은 의미가 아니라 잔존물에 가깝다. 끝난 뒤에도 손에 남는 감각, 말해버리고 나면 더 공허해지는 이름, 하지만 결국은 다시 입에 올리게 되는 어떤 것.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일이니까. 그러나 읽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고독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글을 쓰다가 어쩌면 내가 영원히 혼자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게 문득 참을 수 없이 두려워졌다.
이 소설이 다루는 핵심은 “모든 것이 끝난 뒤”의 작업이다. 복기란 기억이나 기록이 아니라 재해석이고 재창조다.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게 아니라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일이다. 이 감각이 내일의 연인들의 서술 구조를 만든다. 사건은 현재에서 일어나지만, 문장은 끊임없이 그 사건을 뒤로 당겨 다시 바라본다. 이미 지나간 일처럼 말하면서도, 그 지나간 일이 지금을 다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화자는 현재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서사는 진행이라기보다 되감기와 재편집에 가깝다. 끝난 사랑을 ‘정리’하려는 글쓰기조차 사실은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국면으로의 진입이며, 그 진입이 고독을 동반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읽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글을 쓰는 일이 생각보다 고독하다는 그의 고백은, 관계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누군가의 목격을 필요로 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사랑이 끝나도 관객은 필요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영원히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공포처럼 치고 들어오는 순간, 소설은 연애담을 넘어 현대적인 존재론의 불안을 건드린다. 관계는 끝나고, 남는 것은 나의 언어인데, 그 언어가 닿을 타자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거리가 공간감각과 함께 시간감각까지 멀리, 과거로 흘러가게 만들 것 같다는 예감. 여기서 거리는 단순한 물리적 간격이 아니라 관계의 구조다. 멀어진다는 건 장소의 변화만이 아니라 시간이 과거로 쏠리는 방식의 변화다. 둘 사이의 거리가 생기는 순간, 현재는 급격히 얇아지고 과거는 두꺼워진다. 그래서 관계가 끝나기 전부터 이미 끝난 것처럼 느껴지는, 특유의 서늘한 예감이 생긴다. 정영수의 사랑은 종종 이 예감으로부터 시작되거나, 혹은 예감 때문에 더 강하게 붙잡힌다. 사랑의 한가운데에서도 끝을 미리 상상하게 만드는 감각이 작품의 온도를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가까워지지만 그녀와 나의 경우에는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그 드러나지 않은 부분들을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메움으로써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은 ‘고백의 서사’가 아니라 ‘공백의 서사’다. 말로 모든 것을 밝히는 대신, 말하지 않은 자리를 남겨두고 그 자리를 상상으로 채운다. 가까움은 투명함이 아니라 불투명함 위에 세워진다. 그래서 관계는 안정적 합의라기보다 서로의 해석이 나란히 달리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 해석의 차이가 커지는 순간, 관계는 조용히 비틀린다. 하지만 동시에, 그 불투명함 덕분에 관계가 성립하기도 한다. 말하지 않음은 결핍이면서도, 때로는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내일의 연인들은 사랑을 ‘의미의 완성’이 아니라 ‘언어와 기억의 재조립 과정’으로 그린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푹신하지만 텅 비어 있을 수 있고, 끝난 뒤의 복기는 과거를 다시 쓰는 창작이며, 거리는 시간을 과거로 굴절시키고, 비밀은 말해질 때가 아니라 말해지지 않을 때 오히려 관계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사랑이 무엇인지보다, 사랑이 끝난 뒤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되는지, 어떤 문장으로 스스로를 다시 살게 되는지가 더 또렷해진다. 서평으로 말하자면, 이 작품의 미덕은 사랑을 설명하지 않는 데 있다. 대신 사랑이 남긴 흔적들, 말의 질감, 글쓰기의 고독, 거리의 예감, 침묵의 공백 같은 것들을 통해 사랑을 ‘다시 살게’ 만든다. 읽는 사람은 사건을 따라가기보다, 자신도 모르게 한 번쯤 했던 복기의 방식,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자기 해석의 습관 속에서 이 소설과 만나게 된다.
나는 때로 사랑이란 건 그 자체로 의미를 품고 있지 않은, 그저 질량이 있고 푹신거리는 단어일 뿐이라고 느끼곤 했다.

《내일의 연인들》, 정영수, 문학동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