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게다가 사람들이 연중 이맘때를 이렇게 열심히 기념하는 것은 또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사람들의 삶이 어떻든(그들이 지금 지나치는 이 집들 가운데에는 근심스러운 고민도 있으리란 걸 제인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삶이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축하할 일임을 알기에 그들은 이맘때를 축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 제가 리뷰할 책은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버 키터리지》입니다. 저는 사실 반복해서 읽지는 못하는 타입의 사람인데요. 이 책은 무려 3번이나 읽었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분량과 문체라서 음악 듣듯이 읽었어요. 아, 이런 날은 이런 음악 듣고 싶다 할 때 있잖아요. 또 책을 읽다 보면 아름다운 표현, 언젠가 꼭 말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말할 지 몰라 표현하지 못한 제 맘을 정확히 캐치한 듯한 그런 표현이 많아서 매번 다른 곳에 밑줄을 긋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올해 첫 크리스마스 마켓에 갔다 왔어요. 예전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면 신기하고 설렜던 반면, 이제는 아 한 해가 또 지나가고 있구나-라는 싸인처럼 작동하는 것 같아요. 이 책도 그런 마음에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연말인 지금, 12월에 읽기 좋아요. 제 시어머니는 소설을 참 좋아하십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 중 하나로 이 책을 준비했는데요. 포장을 열어보시더니 "오! 내가 좋아하는 책이야. 아마 20번은 읽었을 거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결국 이 책은 아직 읽지 않은 옆에 있던 시누이에게 갔습니다. 저도 이 정도 빈도수로 읽으면, 시어머니 나이 즘에는 저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녀는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과 있는 건 더 싫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버 키터리지》는 미국 메인 주의 작은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은퇴한 교사 올리브 키터리지를 중심에 두고 여러 인물들의 삶이 엮이는 연작소설이다. 각 장은 독립된 단편처럼 읽히지만, 같은 마을 사람들의 시선과 사건이 겹치면서 한 사람의 인생과 한 공동체의 시간,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고독과 상처를 천천히 쌓아 올린다.
올리브는 거칠고 직설적이며 타인에게 쉽게 다정하지 않은 인물이다. 남편 헨리는 온화하고 사교적인 약사로, 두 사람은 성격이 크게 다르지만 오랜 결혼생활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의지하기도 한다. 소설은 올리브의 결혼과 양육, 아들 크리스토퍼와의 갈등, 주변 사람들과의 긴장 속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불편한 일인지 보여준다.
인생에 갑자기 속도가 붙고 그러다 보면 인생이 어느덧 훌쩍 지나가버려 정말로 숨까지 가빠진다는 걸 알지 못한다고.
동시에 이 책은 올리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울증과 자살 충동, 외로움, 불륜, 상실, 노화 같은 문제들이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로 펼쳐지고, 그 모든 조각들이 결국 올리브의 존재와 느슨하게 연결된다. 누구나 각자의 방 안에서 고립되어 있지만, 어떤 순간에는 아주 작은 친절이나 한마디가 사람을 붙잡아 주기도 한다는 점이 반복해서 드러난다.
결말로 갈수록 올리브는 자신의 거칠음과 후회를 조금씩 자각하고, 나이가 들며 삶의 다른 결을 배우게 된다. 이 작품은 극적인 반전이나 사건으로 감동을 만들기보다, 일상의 작고 잔인한 진실들을 정직하게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설득한다. 일상적인 매일의 삶을 살아내는, 어른을 위한 성장소설이다. 언제가 나도 올리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이미 그럴지도.
매일 아침 강변에서 오락가락하는 사이, 다시 봄이 왔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봄이, 조그만 새순을 싹 틔우면서.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봄이 오면 기쁘다는 점이었다. 물리적인 세상의 아름다움에 언젠가는 면역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사실이 그랬다. 떠오르는 태양에 강물이 너무 반짝여서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올리버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문학동네,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