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이 책을 2025년 2월 처음 읽기 시작하여 약 3개월 만에 완독했습니다. 주석까지 포함하면 약 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인데다가 역사, 철학, 인류학, 사회학, 고고학 등의 정보가 혼합되어 그 밀도가 높습니다. 인류학계에서 꽤 큰 반향을 일으켰고, 수업 중에 여러번 언급된 적이 있어 마침내 읽게 되었습니다. 무정부주의자인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제국주의의 산실인 인류학을 자본주의 비판 대안학문으로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인물에 대한 호기심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2020년 9월 59세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핵심 가치
《모든 것의 새벽: 인류의 새로운 역사》은 단순히 과거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사회를 구성해왔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책은 루소나 홉스 같은 서양 철학자들이 정립한 ‘자연 상태’ 이론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며, 인간 본성과 자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렵채집인에서 농경정착민으로의 이행은 사실 선형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저자들은 수많은 고고학적 발견과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 사회가 ‘점진적으로’ 국가, 계급, 불평등 구조를 형성해왔다는 진화론적 사고에 도전합니다. 이는 기존 인문학에서 흔히 받아들여졌던 ‘선형적 발전 모델’에 대한 반론으로 작용하며, 우리가 생각해왔던 ‘문명화’의 개념을 뒤집어 놓습니다.
특히 자유, 평등, 권위 등의 가치가 고정되지 않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르게 구현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 모든 것의 새벽: 인류의 새로운 역사 》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분석을 통해 인간 본성의 다층성과 사회 구조의 유연성을 강조하며, 오늘날 우리가 고민해야 할 민주주의, 자유, 공동체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독창성과 한계
이 책은 글로벌 인문학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행동주의 경제학과 사회운동 참여로도 유명하며, 그의 독특한 시각은 책 전반에 걸쳐 드러납니다. 공동 저자인 웬그로는 고고학자로서 실증적인 데이터와 이론을 견고하게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내용으로 인해 접근성이 낮다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약 700페이지에 달하는 텍스트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기 때문에 일반 독자에게는 편하게 읽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기존 학계의 정설을 뒤집기 위해 다양한 고고학적 사실들을 제안하지만, 그 지명과 문화가 모두 생소한 독자로서는 책 전반을 이해하는데에 중간 중간 멈칫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저 또한 이 부분이 책을 완독하는 데에 어려웠습니다.
또한 서구 중심적 서사를 비판하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일부 서술은 여전히 유럽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는 학계에서는 늘 숙명적인 비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다양한 문화권의 사회 형태를 소개하며 ‘보편적 인간 본성’에 대한 통념을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서적입니다.
인간은 서로 논쟁하고, 상대의 견해를 설득하려 하거나, 공동의 문제를 함께 풀어내는 과정에서만 비로소 완전히 자각적인 존재가 되었다. 반면 진정한 개인적 자기의식은, 오랜 학습과 수련, 절제와 명상을 통해서라면 소수의 현명한 현자들이 어쩌면 도달할 수 있는 무엇으로 상상되었다.
Humans were only fully self-conscious when arguing with one another, trying to sway each other’s views, or working out a common problem. True individual self-con„sciousness, meanwhile, was imagined as something that a few wise sages could perhaps achieve through long study, exercise, discipline and meditation.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서로 상호작용하고, 교배하고,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등 대부분 추측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모인 인류의 원래 모자이크의 합성물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에 대한 재정의
《모든 것의 새벽》이 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바로 ‘인간은 본래 자유로웠다’는 주장입니다. 인간은 본성상 위계질서와 권력 구조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기존 이론과 달리, 이 책은 다양한 원시 사회와 문명 사례를 통해 ‘다르게 살 수 있었던 가능성들’을 상상하게 합니다. 수렵채집인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때때로 협력할 수 있는, 공동체 안에서 한시적으로 정착하는 삶처럼 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고대 문명에서는 겨울과 여름에 따라 정치체제를 전환하는 유연한 구조를 채택했으며, 특정 공동체는 상시적인 리더가 존재하지 않는 수평적 시스템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체제보다 더 창의적이고 복잡한 구조였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줍니다. 터키에 있는 괴베클리 테페 유적지는 그 증거로 제시됩니다. 이 책에서 괴베클리 테페를 접하고 언젠가 꼭 이 유적지를 방문하고 싶다는 버킷리스트가 생겼습니다.
저자들은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합니다. 그들은 인간은 사회 구조를 의식적으로 ‘선택’해 왔으며, 따라서 현재의 시스템 역시 변화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이 메시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깊은 성찰을 안겨주며,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총평
《모든 것의 새벽》은 단순한 역사책을 넘어, 인류 문명과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21세기형 인문학 책입니다. 방대한 분량과 어려운 개념과 다양한 예시에도 불구하고, 인류 사회 전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원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과거의 다양성을 이해한다면, 인간은 다양한 미래의 선택지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외에도 인간의 원초적 욕구이자 의무인 ´자유´에 대해서도 재고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완독했음에도 여전히 인간과 그의 삶은 완벽히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인간을 비인간 동물과 구별하는 것 중 하나는 동물이 필요로 하는 것만 정확히 생산하는 반면, 인간은 항상 더 많이 생산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과잉의 존재이며, 이것이 우리를 가장 창의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파괴적인 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The Dawn of Everything: A New History of Humanity, David Graeber and David Wengrow,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