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정말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첫 포스팅에서 다뤘던 《모든 것의 새벽: 인류의 새로운 역사》의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쓴 책입니다. 그때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책을 처음 읽고, 그의 지난 행적을 한창 쫓아다니다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목부터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저는 독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읽고 싶은 한국책은 대부분 아이패드 이북으로 읽습니다. 원문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배로 오래걸리기 때문에 번역문을 구할 수 있다면 한국어로 읽기를 선호합니다. 아이패드를 쓰기 전에는 크레마 이북 리더기를 꽤 오랜기간 동안 썼는데, 반응 속도가 너무 느려서 언젠가 답답하더라고요. 이북으로 읽고 꼭 소장하고 싶은 책은 후에 구매하기도 합니다. 정말 읽고 싶은 책인데 이북이 없는 경우도 때때로 있어 아쉽습니다.
일주일에 닷새씩 내심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일을 하러 나가는 것보다 더 기운 빠지는 일이 있을까?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지 않는 일에 왜 시간을 바치는가?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불쉿잡》에서 우리 시대 노동의 기만적인 현실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이 책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에 ‘쓸모 없음’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일을 계속하고 있는가?
그레이버는 ‘불쉿잡’을 단순히 지루하거나 힘든 일이 아닌, 자기 자신조차 쓸모없다고 느끼는 일로 정의한다. 업무는 있는 것 같지만 목적은 없고, 시스템은 돌아가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무슨 기여를 하는지조차 설명할 수 없는 상태. 그는 이러한 일들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나 게으름이 아닌, 사회 구조 자체의 실패와 왜곡에서 비롯된 현상임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케인스가 약속했던 유토피아는 왜 실현되지 않았는가?
1930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기술의 발전이 주당 15시간 근로 시대를 가능케 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생산성은 오르고, 자동화는 확산됐지만, 사람들은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만족한다. 그레이버는 이 역설을 “기술이 인간의 해방이 아닌,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그는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엄청난 수의 인구가 실제로는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일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본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비효율을 넘어, “우리 공통의 영혼에 새겨진 상처”라고 표현할 만큼 깊은 정신적·도덕적 손상을 유발한다.
노동의 도덕화, 그리고 지배의 정당화
그레이버는 불쉿잡이 단순히 시장의 실패나 우연한 일자리 창출의 결과가 아니라고 말한다. 권력을 쥔 지배계층이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일하게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이 사태는 정치적이다.
그는 사람들이 여유 시간을 갖게 되면 위험해진다는 ‘1960년대의 교훈’을 예로 들며, 권력자들이 노동을 덕목으로 포장하면서 사람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치열하게 노동에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회적 통념은 수많은 사람을 불필요한 노동에 묶어두는 데 효과적인 도구로 작용한다.
불쉿잡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많은 산업에서 실제 수요보다 공급이 앞서는 상황 속에서, 기업은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한다. 광고 산업은 그 대표적인 예다. 제품을 팔기 위해 사람들에게 그 제품이 필요하다고 믿게 만드는 일, 그리고 그 제품의 쓸모를 과장하는 일을 반복하는 구조. 이 과정에서 그레이버는 광고인들조차 자기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이는 ‘고객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이 아니라, 욕망 자체를 만들어내는 구조다. 그리고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새로운 불쉿잡이 끊임없이 창출된다. 현실은 실재보다 못한 대체물로 구성되고, 사람들은 자신이 ‘쓸모없다’는 감정과 함께 살아간다.
시간, 노동, 존재의 감각
책의 후반부에서 그레이버는 시간 개념에 대한 인류학적 성찰로까지 논의를 확장한다. 누에르족이나 중세 유럽인들이 ‘시간’을 행동의 척도로 이해한 반면, 현대 사회는 시간을 일정한 단위로 잘라 자산처럼 거래한다. 시계는 일의 기준이 되고, 시간은 곧 비용이다. 노동은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산출을 내는 행위가 되었고, 시간은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은 자율성의 부재로 이어진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빚진 존재”로 규정되고, 생산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도덕적으로 무가치한 존재가 된다. 그레이버는 이러한 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는 인간은 일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며, 노동은 목적이 아닌 수단일 뿐이라고 말한다.
결론: 일의 의미를 되묻는 급진적인 통찰
『불쉿잡』은 단순히 ‘직장생활이 괴롭다’는 하소연을 담은 책이 아니다.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전제를 해체하려는 급진적이고 진지한 시도다. 우리는 정말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그저 바쁘게 지내는 흉내만 내고 있는가?
그레이버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하는 일이 없다면 세상이 달라질까?" 그리고 조용히 덧붙인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불쉿잡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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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일이 왜 이토록 무의미하게 느껴지는지 고민하는 직장인
- 노동과 시간,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싶은 이들
- 인류학적 관점에서 ‘일’의 본질을 다시 바라보고 싶은 자
《불쉿잡》, 데이비드 그레이버, 민음사, 2021